학술 용어로는 파라소셜(준사회적 관계)이라 부르는 현상의 일상어 버전이다. 매일 보는 유튜버의 근황을 친구 소식처럼 챙기고, 좋아하는 스트리머에게 반말 댓글이 자연스러워지는 단계를 거친다. 상대는 나를 모른다는 걸 인지하는 선까지는 건강한 팬심이지만, 그 선을 넘으면 과몰입 경고등이 켜진다.
예시
그 유튜버 강아지 이름까지 다 알아.
내적친밀감 만렙이네, 근데 걔는 널 몰라 ㅋㅋ
정의 3개 · SlangKorea 편집부 작성·검수 · 공감순 정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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학술 용어로는 파라소셜(준사회적 관계)이라 부르는 현상의 일상어 버전이다. 매일 보는 유튜버의 근황을 친구 소식처럼 챙기고, 좋아하는 스트리머에게 반말 댓글이 자연스러워지는 단계를 거친다. 상대는 나를 모른다는 걸 인지하는 선까지는 건강한 팬심이지만, 그 선을 넘으면 과몰입 경고등이 켜진다.
예시
그 유튜버 강아지 이름까지 다 알아.
내적친밀감 만렙이네, 근데 걔는 널 몰라 ㅋㅋ
실제로는 잘 모르는 상대, 특히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, 스트리머 등에게 혼자서 느끼는 친근함을 뜻한다. 영상이나 SNS로 자주 접하다 보니 마치 아는 사이처럼 느껴지는 일방적 감정을 가리킨다.
예시
A: 그 유튜버랑 친구냐? 왜 이름 막 부르냐.
B: 아 미안, 매일 보다 보니 내적 친밀감 쌓여서.
'과연 이런 관계를 건강하다고 볼 수 있을까?' 충대신문 여론면의 '밀물썰물' 칼럼은 2025년 1월 이 질문을 정면으로 던졌다. 언론정보학과 김지훈 기자가 쓴 이 글은 개념 설명을 짧게 끝내고 규모부터 짚는다. 칼럼이 제시한 수치로 유튜브의 국내 사용자는 2024년 기준 4,579만 명, 전체 인구의 88% 수준이다(칼럼은 이 수치의 출처를 따로 밝히지 않았다). 그 화면 속 인물에게 시청자가 느끼는 애정은 '상호작용 아닌 시청자의 일방적 감정에 불과하다'는 것이 글의 진단이다. 평가는 양면적이다. 유튜버가 기부나 봉사를 공개적으로 하면 시청자도 선한 행위를 하게 된다며 '선한 영향력'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, 편하게 맺을 수 있는 비대면 관계에 안착해 상처받기 쉬운 현실 관계를 외면하는 습관은 '스스로를 은둔형 외톨이로 만드는 지름길'이라고 경고한다. 칼럼의 결론은 이 관계가 장기적으로 시청자에게 독이 되리라는 쪽이다.
출처
“현실에 있는 친구처럼 실제로 만나진 않아도 가까운 사람이라 생각하는 그런 감정. 우리는 이를 흔히 ‘내적 친밀감’이라고 부른다.”
예시
A: 요즘은 사람 만나는 것보다 방송 켜 두는 게 편해
B: 그 편한 게 내적 친밀감의 함정이래